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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 피부 풍경 (Skin Landscape) ] 

고르게 흐르는 유려한 피부 위, 돌기가 자랐다.
어느 날 불쑥, 거기 있었다. 손끝이 훑자, 서러운 기색이 번졌다.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것일 테다.
막힌 배출구가 부풀어 오르고, 관리하지 않은 상처의 흉과 석석한 거친 돌기.
한편, 아직 남아 있는 부드러운 살결.

 

 

피부는 생명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이자, 내면과 외부 환경을 나누는 심리적 경계이기도 하다. 모체의 품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온 순간, 피부는 생소한 감촉과 자극을 맞이한다. 보호자의 손길, 공기의 온도, 바람의 결, 낯선 표면의 촉감까지, 모든 접촉은 살갗 아래 차곡차곡 퇴적된다.

 

살갗을 닮은 인조가죽은 존재하지 않는 내면의 피부를 형성한다. 보호자의 따뜻한 품과 온기는 부풀어 오른 피부의 푹신함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방어 기제는 뾰족한 가시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는 부푼 돌기들로 드러난다. 바느질로 이어진 표면은 노동과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한 과정을 보여주며, 때로는 잘못 치유된 흉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피부 위 돌기와 요철은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감정의 지형이자, 양가성을 품은 내면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피부 풍경이 된다.

 

관객은 이 낯선 피부 풍경 속을 걷고, 마주하고, 만지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표면 위에서 각자의 피부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는 차갑고 화려해 보이지만, 만지면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감각할 수 있다.

 

자연이 빚어낸 변칙적 아름다움을 감각하듯, 우리의 피부 또한 경험과 감정이 얽혀 변칙의 풍경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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